사라지는 단어가 아쉽다
2010.4.15
"그건 물론 그리스도에게 하나의 본성만 있다고 믿는 이교도지. 그 단어를 처음 본 것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였는데, 그 책은 표지에 로마의 유적 그림이 있는 녹색 델 로렐판 축약본이었고, 초등학교 때 내 용돈 75센트를 주고 뉴욕의 밸리스트림의 밀 로드와 페닌슐러 불르바드가 만나는 모퉁이에 있는 서점에서 산 것이지.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그 책을 읽었어. 봄이었기 때문에 밀 로드의 나무마다 눈이 트고 있었지."
나는 그가 monophysite라는 단어를 처음 만나던 영광스러운 날을 기억할 때처럼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정확하게 옛 애인의 얼굴, 옷, 향수를 기억하는 남자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중 '책벌레 이야기'에서 p.37
(잊혀진 옛 단어를) "우리가 조금 알지. 그리고 그나마 아는 것조차 그 때보다 덜 아름답고. 네 목록에 있는 단어들을 한 번 소리내서 읽어 봐! 우리가 잃어버린 말들은 내포적이고, 우리가 얻은 말들은 지시적이지. 나는 시에서 모뎀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같은 책 p.37-38
패디먼 가의 책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긴 [서재 결혼시키기]를 읽는 중에 멈춰섰던 부분이 있어 옮겨봅니다. 영미권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아름다운 단어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지시적인 단어들이 채워가고 있지 않은가 싶더군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만날 때마다 설레어하며 세심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래에 예전에 스크랩 해두었던 아름다운 우리 단어에 대한 기사를 링크해봅니다.
제 10단어 중엔 '빗내음'이 있는데 명사+명사 사이엔 사이시옷이 못들어가 문법상으로 없는 단어라 해서 서운했어요.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7/h200607111746498515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