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03
[예배자]
아무도 예배하지 않는 그 곳에서 주를 예배하리라
아무도 찬양하지 않는 그 곳에서 나 주를 찬양하리라
누구도 헌신하지 않는 그 곳에서 주께 헌신하리라
누구도 증거하지 않는 그 곳에서 나 주를 증거하리라
내가 밟는 모든 땅 주를 예배하게 하소서
주의 보혈로 덮어지게 하소서
내가 선 이 곳 주의 거룩한 곳 되게 하소서
주의 향기로 물들이소서
J군이 인도하는 기도회 시간에 함께 불렀던 '예배자'의 가사를 생각하며 마음이 시큰했다. 아마 이 곡의 본 의도는 어떤 곳에서도 주님을 예배하는 모습으로 있겠다는 뜻이었겠지... 하지만 날 시큰하게 한 것은 '아무도'와 '누구도'란 두 단어였다. 혼자서 뚝 떨어져서 예배하고 찬양할 수 밖에 없는, 홀로 헌신하는 그 한 명의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 지난 주에 교육감 선거와 토요일의교보순례(?)덕에 '공동체'란주제를 생각하고 있던 가운데 공동체 없이 예배하고 있는 곡 속의 그 예배자가 참 불쌍했다.
그리고 나는, 우리는참 행복하구나 싶었다.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생각과 감정과 고민들을 이야기하고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모임이 있어서. 가버나움도, 토지모임도, 선배 아버지의 부고까지 챙겨서 모두에게 알리는 에셀도 그들의 따스함에 기대고 있는 내겐 모두 소중한 삶의 촉매제 같은 모임.
이 곡을 부르며 '가버나움'의 목적을 생각했다는 J의 말 속에서 가난하고 버림받고 나 홀로인 이들은 그것들의 일차적 뜻 외에도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이란 뜻도 되는구나 싶었다. 주님을 앎에 가난한, 세상의 공동체에서 버림받은, 예수님과의 동행을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진정 바른 공동체란 어떤 모습이여야 할까?
서로가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향해 양보와 이해와 귀기울임이 없어 보이는 모습 속에서
의무와 권리의 균형이 무너진 공동체의 폐허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그런 고민 끝에선거날 참 힘든 일정 중에 아득바득 투표하겠다고 새벽 5신가에 일어났고
전날 늦은밤에 돌아와 쌓인 신문지 사이에서 선거안내문을 발굴(?)해서 탐독하고.
공동체란 권리와 의무를 그 구성원들이 적절히 행해야 이뤄진다는 말에 공감하며...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있던 '공동체란 권리뿐 아니라 의무까지 지켜냄으로서 존재, 유지된다.'는 뜻의 글에 눈길이 멈췄던 건 같은 맥락에서 였겠지. 책 속에서는 야구팀을 예로 들었지만 국가도, 교회도, 결혼으로 성립되는 최소단위둘만의 공동체에까지도 이 룰은 100% 적용된다.
그래서 가버나움의 취지와 부합되는 월천리로의 봉사겸 수련회에 가버나움이라는 이름에 속한 모두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치 못할 사정은 분명 있을 수 있지만 우리의 공동체원들이 권리이자 의무인 활동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다. 더불어 S의 말처럼 같은 기억을 공유하며 시간을 쌓는 모임으로 다져지길 바라며. 왜냐하면 가버나움이 진정 공동체의 모습으로 세워져 나가길 소망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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