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읽다쓰다] 시리즈에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로 쓰려고 했는데, 타이틀이 붙으면 부담스러워지는 경향 때문에 글이 잘 안플려서 결국은 끄적이는 공간인 이 메뉴에 적는다. 그래봤자, 누가 메뉴 타이틀 같은 거 신경이나 쓰겠냐마는, 어느 위치에 글을 쓸거냐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맘이 얼기도 풀리기도 하니 어쩌란 말이냐. 내 맘도 내 뜻대로 조절이 아니 되는걸. ㅠㅠ (임시보관함에 있는 글들이 이런 이유로 계속 방치되고 있음;;)
근래의 내 화두는 '보다'와 '듣다'이다.
이 두 단어 속에 숨어있는 뜻들에 집착하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드림공동체와 이찬수 목사님의 말씀에서 기인한다. 얼마 전에 쓴 글에도 있는 세상의 basic principle... 그 중자기중심주의에 대한 말씀에 찔린 그 순간부터자체 반성 모드였던 나. 그러던중 들은이찬수 목사님의특새에서 왕이 없었으므로 자기 뜻대로 했다는부분을 풀어 설명해 주시는 부분에서 거듭 찔려버렸다. 자기 뜻대로 했다는 말을 원어적으로 해석하면 자기 눈에 좋은대로 했다는 말, 안목의 정욕이 이끄는 대로 했다는 풀이 말씀에, 삼손 역시 사사이지만 세상의 것들에 홀려 눈에 보기 좋은대로 해서 결국 눈이 뽑히게 되는데, 여기서 눈이 뽑히는 것이 이런 뜻에서 의미심장하다는 목사님의 해석에 몇 달 전 무심코 해버린 말이 생각났다.
'보는걸 탐해서눈이 나쁜가 봐요.'
생각해서 나온 말이 아니라 입이 먼저 뱉어낸 말이었는데, 어찌 이리 정곡을 찔렀을까. 몇 달 후에 내가 이런 화두에 잡혀있을 걸 예상이나 하고 한 말처럼. 사사기의 시대나 지금이나 눈에 좋은대로, 자신의 뜻에 합한대로 사는 걸 당연시 하는 세상에서 난 얼마나 당신에 집중했나 싶었다. 그리고 곰곰 생각하면서 깨달았다. '보다'의 반대편에 서 있는 다른 감각이 '듣다'임을.당신은 '나를 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내 말을 들으라'하셨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다. 오감중에서 가장 접근성 있고, 가장 유혹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대부분의 정보를 용이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감각기관은 시각일지라도... 보고 즉각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조금은 느리게 전해질지라도 상대의말새에서 묻어나는 깊숙한 곳까지 귀기울여 듣기를 바람이 아니었을까.외모를 보기 보다는 중심을 본다는 말씀은 그의 속말을 듣는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이즈음 [첫눈]을 봤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단어 하나하나,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고 맘을 알기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이었다. 그들의 귀기울임처럼 120% 집중해서 대화를 해본적이 있었나, 수많은 말들이 범람하고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아메'와 '비'로 통했던 그들보다 더 잘 통한적이 있었나. 관계의 처음은 '보다'로 시작할지라도 유지는 '듣다'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사람과의 관계이던, 주님과의 관계이던.
한 순간 한 순간, 당신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게 되길 바란다.그간 집중했던 활자체가 적힌 책과의 대화나 영상매체에서 벗어나 강해를 듣고, 오디오 북을 들으며 귀기울이는 연습을 해본다. 보는 건 이미 충분히 매진해 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 중심에서 당신 중심으로 변화하길 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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