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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밑줄을 긋다... 사진은 언젠가의 Seoul Int. Book Fai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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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8.31

엄마가 아는 후배가 영화사쪽에 있다고 준 무료 영화표를 들고 금요일 저녁을 보내려고 영등포 프리머스에 다녀왔다. 공짜 표인건 좋은데, 왜 보고 남은 무료 표가 한장인거냐, 아무리 혼자 영화보는 걸 좋아라 한다지만 덜렁 한장을, 그것도 제한도 많아서 주말엔 못보고, 개봉 후 일주 이상 지나야 하며, 매진되기 전에 표를 교환해야 하며 등등,,, 다 맞춰서 보느라 금요일 밤 수술실에 혼자 남아서 일찍 끝난 시간 만큼 공포영화 볼 예비운동(?)을 하고서야 8시반 경에 영화관에 도착했다. [심슨]과 [두 사람이다]와 [기담]사이에서 고민을 했는데, 혼자 남은 수술실에서 이래저래 시간을 지체한 관계로[심슨]은 이미 상영중이었고, [두 사람이다]는 일주일 제한에 걸려서 안된단다. 그래서 9시 20분 마지막 타임의 [기담]을 봤다.

원체, 공포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은 영화 안보는 편이지만 공짜는 봐줘야지 싶고, 또 얼핏 들은 바에 의하면[기담]은 연장상연이나 재상연을 바랄만큼 사람들이 좋은 평을 한다해서 조금은 떨리는맘과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반쯤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좌석 맨 뒷쪽 구석 자리에 앉았다.생각해 보니 얼떨결에, 저 먼 예전 대학시절에 본 [스크림]이후로 공포영화를 본 적이 없군;;

보면서 깜짝 놀라며 무서워서 두근댔던 부분도 물론 있었지만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를 알 듯 했다. 결국은 사랑 얘기다, 공포의 탈을쓴 사랑 얘기. 네 개의 에피소드로 엮여져서 옴니버스 같으면서도 장면들이 오버랩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구성 좋아한다. 구멍난 부분을 끼워 맞추는 기분이랄까.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것을 암시하듯이 흘러나오는 아리아-분명 어디선가 많이 들은 음악 같은데, 이름은 모르는 음악이 흐른다. 아리아가 맞는지 모르겠지만그리 부르고 싶게 만드는 신기한 느낌의 노래-도 공포를 조장하기 보다는 슬픈사랑 얘기의 배경음악 같다. 그리고 두번째 얘기의 클라이맥스, 이 아리아가 흐르는 부분에서 울었다. 그 끝없는 사랑과 용서에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와 버렸다. 공포 영화보고 감동 받아서 울었다고 하면 엽기적인 감성의 소유자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운 게 사실인걸 어쩌랴?

어쨌든 이 글을 쓴 목적은 울었다는 얘기를 쓰고자 함이 아니다. [기담]을 보고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하게된 이유는 처음 에피소드부터 마지막까지 흐르는 그 주제의식에서 클램프의 감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겉은 공포지만 내용을 파고 들어가면 이건 클램프의 오마쥬 아닌가. 자막 올라갈 때 보니 박진성외 1인의 [병원기담]이 원작이라고 되어 있던데 이들의 원작을 읽어보고 싶었다. 원작자의 생각에도 이런 이야기가 들었던 건지, 각본자나 감독의 생각 속에서 클램프의 사상(?)이 삽입된 건지 그 원류가 너무 궁금해져 버렸으니까. 클램프의 [동경바빌론]과 [X]를 안읽고는 나올 수 없는 듯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었으니 말이다. 아니면 이 주제 의식은 인간 본성을 들여다 보면 누구에게나 들어 있는 건가 싶기도 했고.

(이제부터 영화 안 본 분들에겐 내용발설이 될지도 모르는 얘기들이 마구 나올 예정;)

첫 에피소드인 의대생 정남과 원장의 딸 아오이 얘기의주인공은 사실 원장이다. 어머니의집착적인 사랑을 그린 화. '딸을 죽게 한 사람에게 죽어서도 딸을 내줄 수 없었어요.'라고 말하며 산 자인 정남과 죽은 자인 아오이를 영혼 결혼식을 시킨 어머니의 맘이 공포로 그려진 것. 어쩌면 이리도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동전의 양면이란 걸 절절히 표현해냈는지. 망자가 산자의 우위에 설 때 사랑은 변질되어 죽음으로 드러난다. 결국 무서운 건 망자에게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이지, 망자가 아니다. 그리고 바로 이 첫 에피소드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의 사이에서 흐르며 어머니의 저 독백같은 중얼거림이 들렸을 때 짜르르~ 전율이 흘렀다. 이건 [X] 외전이랑 너무나 똑같았으니까.

두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얼마 전까지 금요일마다 배웠던 프로이트, 라캉 교실을 영화로 실습하는 기분이 들어서 혼자 이 우연에 놀라워하며 즐거워 했다. 때마침 영화를 본 날도 금요일 강의가 진행되던 시간이고. PTSD(사고후 외상 증후군)의 전형인, 가족이 모두 죽은 교통사고에서 혼자살아난 소녀의 이야기.분명히 어렸을 적 비슷한 경험으로 PTSD를 겪었음이 분명한 의사 수인과 이 어린 소녀의 관계가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또한 교통사고의 배후에 서려있는 소녀와 엄마와 새 아버지와의 관계가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룬다. 증상은 기억의 상징이라는 말을 어쩜 이리 영화에 잘 적용해 놓았을까. 소녀의 악몽 속에서는 사고에서 내렸던 눈이 흩날리고, 아마 소녀가 혼자만의 비밀을 수인에게 털어놓고도 죽게 된 건 눈이 내렸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소녀에겐 이 지독한 연결고리가 깨기 힘든 기억이었으리라. 이 에피소드에서 최고의 대사는 '네 잘못이 아니야.' 첫번째 에피소드의 어머니의 사랑과는 또 다른 사랑을 그려주어서, 나까지도 용서받은 듯한 기분에 스르르 눈물이 흘러내려 버렸다. 이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의 의미는 내겐 아직도 미스테리 같지만 '사랑하니까 죽어줘.'정도일까. 아니면 결국 망자의 우위를 그리기 위해 에피소드를 맞추다 보니 그리된 걸까.

세번째 에피소드는 간단히 말하면 에피소드 내에서도 잠시 힌트를 주듯이 언급되는 이중인격 혹은 다중인격에 대한 이야기. 그 이중인격의 원인이 떠난 사랑을 못 잊어서이기 때문에 또 결국은 사랑이야기랄수도 있겠고.비정상적 애도의 과정에서 일어난 정신 분열이랄까. 군인에 대한 증오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었으면 하는 열망이 얼마나 강했으며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을 하나로 만든 원인들을 그리 잔혹하게 죽여나갔을까. 그런데 세번째 피살자까지는 군인이란 공통점으로 이해가 되는데 왜 마지막 희생자는 전혀 엉뚱한 이를 선택했을까 의아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적 인물을 제일 무서워 하는 나이지만 인영과 동원에겐 동정심이 일었다.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되지는 않겠지만. 세번째 에피소드의 인상적 대사는 마지막 부근에 등장하는 '쓸쓸해.' 란 말. 결국 혼자란 사실을 알았으니 얼마나 쓸쓸했을까. 그리고 또 [동경바빌론]의 마지막 권인 7권의 말이 연상되었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에피소드라 칭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지만 앞서 세 에피소드를 회상하는 액자 밖의 이야기를 나름 네번째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4'라는 단어를 살리려고 노력한 듯 하니, 에피소드도 넷으로 쳐주기로~첫 에피소드 도입 전에화자격인 정남은 4일동안 일어난 일들을 회상한다고했고 그에 맞춰서 에피소드들은 카운트 다운되듯이 2일전, 3일전으로 거슬러올라 갔으니.공포영화답게 '4' 살리려고 많이 노력했군요, 라고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마음~^^ 정남은 아오이와 영혼결혼식을 한 후에 2번이나 산 사람과 결혼을 했지만 다들 이상스레 일찍 죽고, 혼자-아니, 영혼인 아오이와 함께- 교수 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4일간의 기담이 있었던 안생병원이 사라지는 날, 확실히 영화 속에서들어나진 않지만 아오이의 곁으로 간다.

네 이야기 모두 결국은 산자들이 산자로서 살지 못하고 망자에 사로잡혀 있는 이야기이다. 딸을 잊지 못하고, 어머니와 새아버지를 떨쳐내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망자들에게 점령당한 삶을 살다 결국 그들의 세계로 간 이야기. 마지막 장면에 촛불을 들고 창백한 얼굴로 뒤를 바라보며 눈 오는 밤으로 나가는 사람들-영혼일까?-의 모습 속에 울려퍼지는 한 마디가 가슴을 툭쳤다. '지금은 덜 쓸쓸하니?'라고 묻고 싶어졌다.

보태기.

[기담]에서 나나세 오카와를 떠올린 이유가 됐던 [X] 단행본 11권과 TV편 9화, [동경바빌론] 7권의 이야기를 덧붙여 본다.

- [X]11권외전 스메라기 스바루편 + TV편 9화 '음양': 스바루는 외법으로 죽은 애인의 시체를 살려놓고 넋을 잃고 사랑하고 있는 여인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애인을 시체로 돌려 놓습니다."이 아이는 행복했을지도 몰라요. 자신의 세계에서 그만을 생각하며 살았을테니까요." "그렇지만 죽은 사람에게조차 이 아이를 빼앗기긴 싫었어요. 나도 마음이 병들었으니까요."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은 마음이 병든 사람만 할 수 있다." 는 의뢰인의 말을 되세기며 집을 나온 스바루는 하늘을 바라보며 "세이시로..."라고 읊조립니다.

첫번째 에피소드의 아오이에 대한 엄마의 마음과 흡사하지 않나요? 세번째 에피소드의 죽은 이를 죽었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영의 모습과 시체를 살려놓고 사랑하는 딸의 모습도 비슷하고.

-[동경 바빌론] 7권의 마지막 장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모두 외로운 존재일지도 몰라."라는 엄마에게 죽임을 당한 소녀의 영이 한 말에 세이시로를 떠올리는 스바루군.

세번째 에피소드의 '쓸쓸해.'란 말에서 전 이 말이 떠올랐어요.

posted by rem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