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13~15
이 기분을 잊고 싶지 않아. 그래서 자고 싶어하는 몸을 채찍질(?)하여 기록을 남깁니다.
0. 스치듯이 떠오른 생각 하나에 당신의 말씀이 다시 들리던 순간.
지난 토요일부터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나 교감에 목말라하며 뒤척이다가 스치듯이 떠오른 생각 하나에 당신과아주 오래간만에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대학 신입생 시절 청년부 예배마다 당신과 교감했던 그 순간 이후로 10년만에야 다시금! 그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당신께서 말씀하신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순간순간들이3일간 이어지고 있어 기/쁘/다.몇백년만에 느낀 '시작'이란 기분이 드는 새해와 더불어 당신이 주신 선물일까?
1.선물
종종 선물을 주고 나서도 걱정이 될 때가 있다.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 필요하고 적당한 선물을 한건지 스스로가 의심스러워 말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받은 사람이 잘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준 사람의 마음을받은 사람이 이해했다고 해석되었기에.그러다가 당신도 똑같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라는 선물,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인간이란 유한한 존재로 포장해서 내려보냈을 때, 그 선물을 받는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기쁘거나 슬프지 않을까? 당신의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우리, 또 그 선물을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모습에 주님도 나처럼 이렇게 기쁘겠지...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은 어찌보면 지극히 단순한게 아닐까 싶다. 많은 직분, 봉사, 헌금도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는 한 방편이겠지만 무엇보다 기본이 되는 건, 당신이 주신 예수님이란선물을 받아들여 귀하고 소중하게 사용(?)하는 것. 어쩌면 지금까지 이렇게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건 그 기본,선물에 대한 감사가 결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라도 이렇게 알 수 있도록 말씀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4:17)
2. 히브리서
내 맘대로 이 달의 성경말씀은 '히브리서'이다. '1'의 생각을 하고 나서 감격에 겨워하며생각만있고 게을러못 읽은 히브리서를 읽어내려갔다.어찌나 술술 읽혀내려 가는지. 로마시대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고 있는 찰나의,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거나 지체하고 있는 당시 크리스천들이 꼭 내 모습 같아서 였는지도. 그러다 13장의 한 구절에 눈길이 멎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히 13:16)
아는 구절이었지만 이 날 따라 이 구절이 꼭 가버나움이 드려야 할 '제사'로 여겨졌다. '1'에 이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두번째 방법이기도 하고. [가]난하고 [버]림받고 [나]홀로인 자들을 포함해 당신의 선물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에게 당신의 선물인 진짜 사랑-예수 그리스도-을 전하며 선을 행하고 나눠주는 것. 이 것이 진정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예배이자 제사이고 먼저 선물 받은 자로서의 자세가 아닐까.
지난 토요일은 당신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이 두 가지 방법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며 잠들었었다.
3. 돌아보아
그런데 주일 대예배 본문이었던 사도행전에서 '떡을 떼며'가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게 아닌가. 어제의 연속이었다. 또 말씀을 하고 계셨다, 당신은. 코이노니아, 나눔, 어젯밤 히브리서의 말씀. 'One+One'은 목적이 아니다. 당신과의 교제, 성도들간의 교제, 당신을 기쁘게 하는앞서 두 가지의 방법을 실천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결과일 뿐.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부족했던 건 '돌/아/보/아'였다. 당신의 말씀을 다시금 곱씹는 '돌아보아'가 결여되어 있었고, 교회 안팍으로 내가 속한 그룹 외의 것들을 돌아보는데 무심했었다. 돌아보지 못했기에 당신의 선물을 줄 곳도 눈에 띄지 않았고, 나눌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당신을 기쁘게 하지 못했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24)
4.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이날 오후 찬양예배에서 부른 찬양 중에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가 있었다. 토요일부터 이어진 생각들이 '기쁨'이란 단어와 연결지어지기 때문인지 이 선곡 자체도 당신께서 예비하신 듯 하여 신기했다. 그리고 예전에 이 찬양을 부를 때 어떤 식으로 행해야 당신의 기쁨이 될 수 있는 건지알 수 없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젠 그 답을 알게되어 뿌듯한 마음... 더불어 그 답을 알려주셨으니 이 찬양의 노랫말처럼 다짐하는마음으로 찬양을불러야지 싶었다.
5. 죽음보다 강한 사랑
대개 주일 이후로는 당신의 말씀을 듣는 귀가 닫혀버리곤 한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아름다운 동행의 한 꼭지인 '선교 이야기'의 한 부분을 통해 사오정 귀처럼 덮여진 내 귀를 들어 주님께서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나는 믿는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찾아주는 이들이 있는 한 이 민족은 행복한 사람들이란 사실을.'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니! 지난 주에 보여주신 구절이 아니던가. 우연의 반복에 민감한 나란 걸 아시기에 이런 방법을 사용하시는 걸까?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 주신 예수님, 우리 역시 그 사랑을 갖고 나누어야 함을 다시금 말씀하신다. 그리고 더하신다. 나는, 우리는 그런 주님이 있기에 행복한 사람이란 사실까지.
내일은 또 어떤 말씀을 들려주실까. 기대가 되지만 혹시나 어느 사이에 당신과의 통로가 좁아지거나 사라지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제게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큰 귀와 부드러운 마음을 언제까지나 허락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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