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1-02
1.
수술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3개월 후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왜 그런고 하니, 수술기구들이나 각종 멸균품들의 expire day(유효기간이라고 해야하나? 국어로 어찌 번역해야할지 모르겠다;;)가 3개월인 경우가 많기에 extra 기구들을 싸면서 쓰는 날짜가 3개월 후이기 때문.얼마전 수술 후 기구들을 싸면서 보조원님 왈,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12월 24일이네요.'라는 말에 무슨 말인가 갸우뚱했다. 올해 입사하셔서 아직은 모든 일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시는 G 보조원님의 시각에 가끔 일상으로 여겼던 일들에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이 글을 쓰게 된 생각들의 계기도 그 말들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그리고 10월 1일에 기구들을 싸면서 expire day를 적다가, '1월 1일'을 쓰다가 '이제 2008년도 끝나가고 있구나, 벌써 2009년이구나.'* 생각했다. 아직은 10월인데 다가오는 1월을 미리 생각하는 건 걱정쟁이 같지만 어떻게 보면 위기감(?)을 일찍 느낄 수 있어 좋기도 하다. 출근하면서 달력을 넘기면서도 무심히 지나쳤던 세월의 흐름을 연필로 또박또박 적어가며 느꼈다.
3개월... 후, 진짜로 1월 1일이 되었을 때 느낄 감정을 간접체험하며, 예방주사를 맞듯이, 다가올 신선함과 당혹스러움(?)을 미리 껶고 아쉽지 않도록 3개월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갖을 수 있는 건 이 직업의 특권 중 하나? (또 쓰다 보니 생각났는데, 과자 봉지에 유통기간 찍는 그 분들은 그럼, 1년 이상을 먼저 사는 기분일까 궁금해진다.) 올 초 다이어리에 적어놓은문구대로 살려고 노력했나 점검의 시기를 갖게되어서 다행이예요. 더불어 함께 한 생각은 균이란 하나도 없는 상태, 멸균의 기한도 아무리 잘 멸균을 유지하려고 해도 3개월밖에 안된다는 것, 그렇게 완벽을 요하는 것들의 기한도 이 정도인데, 영원한 것은 정말 당신의 말씀밖에 없다는 가운데 토막 생각은 훌쩍 뛰어 넘은 결론;;
* 일본어 중에 모우(もう)란 단어가 있다. 대표적인 뜻은 '이미'와 '벌써'. 처음엔 왜 헷갈리게 두가지 뜻을같은 단어로 표현하지 싶었는데 이 글 쓰면서 깨달았다. '이미' 지나서 '벌써' 왔다는 너무나 다르면서도 같은 뜻을 갖고 있는 상황을 한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하는게 얼마나 일본적인가? (나 맨날 본류에서 생각의 가지가 너무 많이 뻗어나와;;; 어느새 본 가지는 잊어버린다니까... 혹시 W야, 이 글을 읽는다면 내가 몇가지라고 생각을 정리하며 말하는 건,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한 생각들 중 몇가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적어도 몇가지라고 세면서 생각하면 가짓수라도 생각의 흔적은 남찮니.)
[3개월 전 교회 옥상 하늘]
: 의미 불명, 이 사진을 올려보고 싶었을 뿐.
2.
살아간다는 것, **
연예인 A의 자살에 이어, C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 G보조원님이 그 얘기를 해주셨을 때(오늘 글의 화두제공은 다 G님이네;;), 왠지 농담같은, 현실의 얘기같지 않은 기분이었다. J샘의 말마따나 너무 익숙하고 오랜 연예인이라 친척이 죽은 듯한 상실감도 들고. 엄마의 입장인 분들은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애 둘은 어쩌고. 자식들이 불쌍하다.'가 먼저 입 밖으로 튀어 나오던데, 정말 그 일관성에 신기했다. 모두들 궁금해 하는 자살의 이유는... 바로 그런 궁금증들과 말들의 홍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전혀 말같지도 않은 말도 수많은 억측과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류의 모음 속에서 진실-어쩜 이름대로 그 모두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이들 때문에...-로 화하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그와 비슷한 K샘의 경험을 들으며 생각했다.
하루 전에도 CF를 찍었다는 소식을 누군가가 검색해 놓은 컴퓨터 화면에서 보면서 그런 시시해 보이는 일상조차 모두 중계되는 삶이란 얼마나 옥죄어 드는 느낌일까 싶었다. 그리고 인터넷이란 가상 세계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의 이중성으로 야기되는 결과물의끔찍함과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풍족하게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는데도 상대의 입장과 마음으로 생각하는 자세는 갈수록 줄어드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의아함을 함께 느꼈다.
우리 병원 영안실로 온다는 기사 말미의 글에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지나가는 말로, '이영자도 오겠네. 나 , 이영자 팬인데 싸인받으러 가야겠다.'란 말에 흠칫했다. 실제로 그러시진 않을거라고 믿지만서도 누군가의 슬픔을 공감하는 능력의 결여에서 오는 언행으로 또 다른 슬픔과 아픔을 만들어내는게 아닐까 싶어서. 수샘이 지금 영안실 난리도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말을 듣고는기우가 아니었음이 또 슬펐다.
살아가는 건, 관계의 연속, 그 관계의 파괴에서 오는 끊어짐은 삶도 삶이지 않게 만들지 않을까. 상대의 마음과 -비록 그것이 늘 긍정적인 것들만은 아니고 부정적인 것일지라도- 이어지려는 노력, 끊어진 것도 접붙이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 원래는 마침표를 찍으려고 했는데 산다는 말에 마침표를 찍으면 '죽음'이란 말의 또 다른 표현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쉼표를 찍었다. 그리고 산다는 건 수많은 쉼표의 모음같지 않은가. 쉬지 않으면 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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