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둘기 밥, 고통의 의미에 대해
비둘기 밥을 적으면서 내 고통의 의미는 다른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행과 고통 속에 있는 L 가족과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1개월 밖에 안 된 아기 앞에서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그 이유를 스스로 발견한다면 위로가 되겠지만위안이라고 옆에서 말한다면 상처가 될거란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시가, 글이 필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은 곧바로 찔러 들어가지 않으니까, 느끼고 받아 들일 거리를 갖고 있으니까.
(이 글을 쓰다가 날리고는 다시 쓰면서 이 불행 아닌 불행에 화가 막 나다가, 이런 예화가 떠올랐다. 필생의 전작을 완성하고 잠시 산책 다녀오니 그 원고를 하인이 불쏘시개로 써버렸다는 어떤 작가의 일화가. 그 후에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해 더 좋은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런 식이다. 누군가의 불행은 나 같이 작은 불행에 이런 식의 위안을 주는 셈이다. 그 불행에 힘을 내서 나도 다시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 글 보다 아까 글이 더 매끄러웠는데 아쉽고 화나는 감정은 잘 수습이 안된다. ㅠ_ㅠ)
조금 더 있다가 L 가족이 유연한 맘을 지닐 만한 타이밍에 가만히 병실에 박완서 샘의 책이라도 두고 와야겠다. 아직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주고, 아는 만큼 알려주며, 곁에 있어줄 수 밖에 없어서.
2. condition과position
오늘은 'condition은 변해도 position은 변하지 않는다'는 문장의 다른 의미를 발견한날. 이전에 알고 있던 뜻은'기분과 상황이 아무리 밑바닥이고 힘들어도 그 분의 자녀, 백성이라는 위치는 변치 않는다'였다. 새로 발견한 뜻은 '내가 아무리 높아지려 하고 교만한 맘을 품어도 그 분의 주권 아래 있는청지기이자 백성이라는 걸 잊지말자'정도.권리와 의무가 같이 가듯이 위안의 말 속에는 책임도 있는 법. 다만 그 모든 것 안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자녀를 보듬는 그 분의 사랑, 또 그 사랑에 청지기로 응하는 우리의 사랑.
3. [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의 로즈
p.47 목구멍 안에 또 눈물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눈물방울들을 따로따로 아주 멀리 떼어놓았다. 눈물은 뭉쳐 있을 때만 무서운 것이다.
p.133 ..., 그 다음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아이들이 우는 건 말하자면 부모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고통을 보여주려고,..., 나 역시도 뭔가가 전달되기를 바랐었다. 전달된 게 있었던가, 무엇 하나라도? 전혀.
[퇴마록]의 승희가 떠오르고 [도쿄 바빌론]의 스바루가 연상되고 그래서맘이 아프다.타인의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알 수 있는 건 선택 받은 특별한 능력이지만, 알고 싶지 않은데 맘을 읽어야 하는 승희나 스바루나 로즈나 다들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눈물을 삼키고 자신의 감정은 오히려 폐기처분해 버리는 인물들이다. 남의 감정을 너무 잘 알아서 자신의 감정은 꼭꼭 눌러 담을 수밖에 없고 특히나 사랑의 맘은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이들. 원하지 않는 감정은 전달되고, 전달되기 바라는 감정은 나타낼 수도 없는 슬픔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계속 울려대는 전화벨에서 어쩌지 못하고 숨던, 꾹 다문 입으로밖에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던 때가 떠올라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드는 타인의 감정에도,타인의 감정과 분화되지 못한 내 감정에도 익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기억 때문에... 더 읽어낼 수가 없었다.
+
어제는 알라딘 오프 중고책방에 다녀왔다. 직원W와 함께 오프서점에서 일하는 계약직 G언니를 만나러. 마침 설 연휴 첫날 방정리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책정리를 해놔서 버리거나 팔 책들로 분류해 놓은 몇 권을 빼들고. (참고로 방정리는 남들 눈에는 그대로. 백 권 정도를 내놨는데 여전히 방바닥에 백 권 정도가 굴러다닌다. 정확히 말하면 쌓여 있다. 그간 200권이 방바닥에 들어눠 있단 걸 정리하며 알았다;; 그래도 W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니 다행인가?)
절판본을 따로 모아 놓은 장소가 있다기에 조금 기대했는데 연휴 기간에 책이 많이 빠져서 인지 정리가 덜 되서 인지 그닥 눈에 띄는 책이 없어 아쉬웠지만 다행히 오늘 들어온 책 코너에서 괜찮은 책을 발굴(?)했다.
- 미야모토 테루의 [우리가 좋아했던 것]: 사락사락 대나무 소리 들리는 방에서 하키코모리 남자아이와 소통하는 씬이 좋아.
매입시킨 책은 5천원정도였는데 산 책은 13,000원 정도라 어찌보면 손해 같지만 버릴 책이었는데, 또 저 세 권은 정말 새 책 같아서 남는 장사(?)란 생각. G언니는 얼굴이 반쪽이라 힘든 표시가 역력했으나 '책 좀 읽은 이의 추천도서' 같은 메모도 책에 붙일 수 있는 능력자가 그 곳엔 필요하니 어쩌랴.
데코 중에 맘에 드는 건 계단 밑에 있던 안내 문구. 개는 책읽는 개만 출입 가능이라니. 스누피만 가능하려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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