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6
게시판에 남긴 글.
강의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전 스스로의 최초의 기억이 무언지 누군가 물으면 답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과 장소로 말하면 이사가는 날 옷장 안이겠군요. 숨어 있으나 찾아주길 바라는, 옷장 안에 숨어서 빼꼼이 열린 문틈의 빛으로 밖을 내다보는, 기억의 시초부터 저는 관찰자의 운명을 타고 났나 봅니다. 이 기억은 나중에 더 더듬어 보기로 하고.
다시 건너 뛰어서, 시간에 대한 대화가 떠오르더군요. 이십대 초반이었나 봅니다. 한 밤, 신뢰하는 L과 했던 대화 한토막.
"과거에 메어 있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죽이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 결국 미래도 현재가 쌓여서 만들어 지는 거잖아. 그러니까 현실에 충실하자고."
이 쯤에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를 읽었던 거 같네요.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에 대한 이 책 속의 메모가 머릿 속을 멤돌던 때였습니다. 강의를 들으며현재를 사는 건 지금도 참, 어렵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의 뒷 부분의 '장소의 부재는 관계의 부재'란 표현에 또 연결되는 한 문장.
'장소가 결핍된 것은 자살의 주요 동기 중 하나랍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한 문장인데 이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걸 최근에 다시 읽다 보고는 가정이란 공동체에 대해 생각을 했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최초의 장소는 가정, 관계로 말하면 가족이니까요. 아마도 무너진 가족 공동체가 늘어나면서 삶에 대한 애착들도 끊어져 가는 건 아닌가 싶은. 그러니까 또 언젠가의 대화 속 문장 'Condition은 변해도 Position은 변치 않아.'가 장소의 부재를 위로하는 말이자 관계의 부재를 치유하는 말이라고. 변하지 않는 position을 소유한 자는, 장막 안에 거하는 자는 그 하나의 관계만으로 굳건히 살 수 있다고.
이 생각들이 시가 될지는 아직은 미지수지만 어쨌든 생각나는 대로 우선은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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